HAX 스피커v0.2 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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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 왜 만드는가

이 문서에서
  1. 문이 없는 에이전트
  2. 새 키보드는 맞다, 새 모니터는 아니다
  3. 스마트 스피커가 실패한 진짜 이유
  4. 닫힘
  5. 스피커가 아니라 주변장치
  6. 인터넷을 모르는 기기
  7. 우리가 하지 않을 것

문이 없는 에이전트

지난 몇 달 사이 에이전트가 정말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PC에 붙어 파일을 만지고, 브라우저를 열고, 슬랙에 글을 올린다. OpenClaw 같은 개인 에이전트는 텔레그램·디스코드·슬랙 등 스무 개 넘는 채널에 붙고, Hermes는 홈서버에서 조용히 돌아간다. Claude Code는 터미널에서 코드를 쓴다.

그런데 그 에이전트들에게 다가가는 길은 이상하리만치 좁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앱(ChatGPT, Claude 앱)을 열거나, 내가 만든 에이전트라면 메신저 창을 열어 타이핑해야 한다. 팀과 회의를 하고 나면 AI가 요약을 만들어 주지만, 그 요약을 내 에이전트에게 넘기려면 내가 복사해서 붙여 넣어야 한다. 에이전트는 있는데, 에이전트로 들어가는 이 없다.

이 불편은 사소해 보이지만 구조적이다. 에이전트가 똑똑해질수록, 그 앞에 서 있는 "앱을 열고 타이핑하는" 단계가 병목이 된다. ElevenLabs의 CEO가 음성 에이전트의 핵심을 "매번 지시하지 않아도 되는 지속 기억과 누적 맥락"이라고 말했을 때, 그가 가리킨 것이 정확히 이 병목이다.

새 키보드는 맞다, 새 모니터는 아니다

키보드와 마우스와 모니터는 컴퓨터가 정확한 입력을 필요로 했던 시대의 인터페이스다. 한 글자가 틀리면 명령이 실패했고, 그래서 사람은 기계의 문법에 맞춰 손가락을 훈련했다. HCI의 대부분은 그 훈련 비용을 줄이는 일이었다.

AI는 그렇지 않다. 맥락을 받고 의도를 추론한다. 사람에게 말하듯 말하면 된다. Jakob Nielsen은 이것을 60년 만의 새 UI 패러다임이라고 불렀다. 배치 처리, 명령 기반 인터페이스에 이어 의도 기반 결과 명시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의도를 명시하는 데 가장 빠르고 자연스러운 수단은 말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키보드는 마이크다. 우리는 그 상호작용을 HCI 대신 HAX(Human–AI interaction/experience)라고 부르기로 했다.

다만 논지를 정직하게 끝까지 밀면 한 가지를 수정해야 한다. Nielsen의 같은 글은 시각 정보가 텍스트보다 빠르므로 하이브리드 UI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고, Humane Ai Pin의 사후분석은 음성이 스마트폰 사용 사례의 80%에 맞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말은 입력에 최적이지만, 목록을 비교하고 긴 글을 다시 읽고 표를 훑는 출력에는 눈이 여전히 빠르다.

그러니 새 키보드는 마이크가 맞고, 새 모니터는 새로 만들 것이 아니라 이미 근처에 있는 화면으로의 핸드오프로 정의한다. 음성은 의도와 짧은 결과를 담당하고, 시각이 필요한 결과는 책상의 모니터나 손 안의 폰으로 넘긴다. 책상 장면에서 이것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설계라고 부르기도 어색하다.

스마트 스피커가 실패한 진짜 이유

우리는 오랫동안 Google Home을 썼다. SmartThings로 집을 묶고, 날씨를 묻고, 타이머를 맞췄다. 그리고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 스마트 스피커는 실제로 스마트하지 않았다.

연구는 이것이 우리만의 경험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Alexa 19만 건, Google Home 6만 건의 명령 로그를 분석한 Ammari 2019에서 음악·검색·조명이 사용의 60~70%였다. Porcheron 2018은 가정 내 스피커 사용을 대화 분석으로 들여다보고, 이것은 "대화"가 아니라 요청-응답이라고 규정했다. 한국은 통신사 번들로 더 빨리 퍼진 만큼 더 빨리 버려졌다. 2023년에서 2025년 사이 가구당 보유 대수가 29% 줄었고, 누구·기가지니·클로바·카카오미니는 업데이트를 멈췄다.

문제는 지능 부족만이 아니었다. Beneteau 2019가 열 가족을 4주간 관찰했을 때, 오류가 났을 때 회복하는 부담은 전부 가족에게 있었다. 더 또박또박, 더 크게, 더 단순하게 말하는 법을 사람이 배워야 했다. 침묵을 턴 종료로 오인해 말을 끊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스마트폰보다 나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LLM을 넣는 것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2026년 6월에 나온 Gemini 탑재 Google Home Speaker의 리뷰는 단순 명령에 장황해진 응답을 퇴보로 지적한다. Alexa+의 핸즈온은 멈춤을 턴 종료로 오인하는 같은 실패를 보고한다. 지능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타이밍과 회복이 기기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닫힘

Gemini 스피커에 실망한 진짜 이유는 지능이 아니라 닫힘이었다. 나는 내 에이전트들과 쓰고 싶은데, 그 스피커는 Gemini만 쓰라고 한다. Google도, Amazon도, Apple도 타사 에이전트를 자기 스피커에 올리는 길을 열지 않는다. 열 이유가 없다.

오픈 진영은 어떨까. Home Assistant Voice PE는 훌륭하지만 Home Assistant 전용이다. xiaozhi-esp32는 138개 보드를 지원하는 거대한 오픈소스 생태계지만 중국어권 서버와 LLM 중심이다. 내 에이전트에 붙이려면 Home Assistant를 사칭하는 브리지를 만들거나, 60초 타임아웃과 싸워야 한다. "에이전트 중립 디바이스 프로토콜"은 아직 아무도 정의하지 않았다. MCP의 2026년 7월 스펙과 로드맵에도 오디오와 디바이스 클라이언트는 없다.

여기가 우리 자리다.

스피커가 아니라 주변장치

정체성을 한 단어로 고르면 주변장치(peripheral)다. Karpathy가 그린 LLM OS의 그림에서 LLM은 커널이고 컨텍스트 윈도우는 RAM이며 오디오 I/O는 주변장치다. 우리는 그 주변장치 계층을 물리적 제품으로 뽑아낸다.

이 한 단어에서 세 가지가 따라온다.

첫째, 어떤 AI가 들어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AI든 꽂을 수 있느냐가 핵심 스펙이다. 키보드는 어떤 프로그램에서든 글자를 넣는다. 이 기기는 어떤 에이전트에게든 말을 넣는다. 그래서 프로토콜이 열려 있어야 하고, 프로토콜이 곧 제품이다.

둘째, 기억과 지능은 기기가 아니라 사용자의 에이전트에 있다. 회의 요약을 기기가 만들지 않는다. 기기는 맥락을 나르는 통로이고, 회의 녹취든 방금 오간 대화든 참조(핸들)로 에이전트에 넘긴다. 기기가 기억을 소유하는 순간 또 하나의 사일로가 되고, "개방"은 거짓말이 된다.

셋째, 얇은 기기, 두꺼운 브리지. 기기 펌웨어는 오디오 프론트엔드·웨이크워드·상태 표시까지만 맡고, 판단이 필요한 모든 것(턴 감지, 음성 인식, 라우팅, 세션)은 사용자의 홈서버나 PC에서 도는 브리지가 맡는다. 기기는 5년 살고, 브리지는 매달 바뀌어도 된다.

인터넷을 모르는 기기

주변장치라는 정체성을 끝까지 밀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결론이 하나 더 있다. 키보드는 계정이 없다. 클라우드에 접속하지 않는다. 회사가 망해도 벽돌이 되지 않는다. 이 기기도 그래야 한다.

기기는 인터넷을 모른다. 사용자의 브리지하고만 말한다. 이것은 프라이버시 논거이면서 동시에 수명 논거다. Humane이 2025년 2월에 전량 벽돌이 된 이유는 기기가 회사 서버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말하면 이것으로 프라이버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뢰 경계가 옮겨지는 것이다. 소리는 기기에서 브리지로 가고, 브리지가 음성 인식이나 LLM을 클라우드에 보내면 결국 나간다. 그러니 정확한 약속은 이렇다. "이 기기는 당신의 브리지 외에는 누구와도 말하지 않는다. 그 다음에 소리가 어디로 가는지는 당신이 정하고, 당신이 볼 수 있다." Google과 Amazon의 스피커는 기기 자체가 클라우드 종단점이라 사용자가 개입할 지점이 없다. 우리 구조에서 신뢰해야 할 대상은 사용자가 소유하고 통제하는 상자 하나로 줄어든다. 그리고 OpenClaw, Hermes, Home Assistant를 이미 홈서버에 돌리는 사람들 — 우리가 먼저 만날 사람들 — 은 그 상자를 이미 갖고 있다. 사람들이 개인 에이전트를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고, 우리는 그 선호를 하드웨어로 연장한다.

프라이버시는 설정 화면의 약속이 아니라 확인 가능한 물성이어야 한다. Lau 2018에서 뮤트 버튼을 아는 사람 열한 명 중 두 명만 그것을 썼던 이유는 "눌러도 정말 꺼졌는지 모르겠다"는 불신이었다. 마이크 전원을 끊는 물리 스위치, 펌웨어가 아니라 마이크 전원선에 직접 물린 LED, 공개된 펌웨어, 그리고 USB 전용 버전이라면 무선 칩 자체가 없다는 사실. 프라이버시를 광고 문구가 아니라 회로도로 증명한다. 빅테크가 구조적으로 따라 할 수 없는 자리다.

우리가 하지 않을 것

  • 또 하나의 브랜드 어시스턴트를 만들지 않는다. 기기에 성격을 심지 않는다. 성격은 에이전트의 것이다.
  • 기억을 소유하지 않는다.
  • Matter 허브가 되지 않는다. IoT는 Home Assistant에 위임하고 MCP로 제어한다.
  • 1세대에 배터리를 넣지 않는다.
  • 스마트폰을 대체하지 않는다. 보완하고 핸드오프한다.
  • 데모를 팔지 않는다. 오늘 되는 것만 출시한다. Rabbit과 Humane은 로드맵을 팔았고, 사용자는 로드맵이 아니라 폰과 비교했다.
  • 음질·감도·가격으로 빅테크와 경쟁하지 않는다. 개방성과 개인 에이전트 연결, 그리고 확인 가능한 프라이버시 — 이 축 밖에서는 싸우지 않는다.